아청법위반 유사성행위 및 강제추행 - 무죄
2025-01-13
"사 실 관 계"
어느 무더운 여름날이었던 것 같습니다.
딱 봐도 이제 갓 중학교에 입학한 것처럼 보이는 14~15세 된 어린 학생과 모친이 상담을 받고 싶다고 사무실을 방문했습니다.
예약을 하고 오신 분들이 아니었기에 갑작스럽게 상담이 진행되었고, 다소 어수선한 상태에서 모친은 어렵게 입을 뗐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 학생이 아동청소년성보호에관한법률(일명, 아청법)을 위반한 혐의로 형사사건에 연루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된 것이 아니라 정식으로 지방법원에 형사기소가 된 사건이었습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피고인과 피해자는 유소년축구단에 소속된 선후배관계였고,
피고인이 피해자보다 1살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축구단의 감독은 다름아닌 피고인의 부친이었습니다.
이들은 방학을 이용하여 합숙을 하였는데,
피해자의 주장은
피고인이 합숙을 하면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하여
성기를 만지는 추행을 하거나,
피해자의 손을 잡아 피고인의 성기를 잡게 한 후
‘자위’를 시켜달라고 요구하였는데, 피해자가 이를 거부하자 겁을 주면서 피고인의 성기를 만지게 하였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쯤 되면 상황이 심각했기에 그 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모친과 당사자 학생의 말을 깊이 경청했습니다.
상담시 많은 이야기를 했지만, 결론적으로 소년은 그러한 사실 자체가 없다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가 들어도 소년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가 너무 빈약했습니다.
그렇다고 눈 앞에 있는 소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기 때문에 변호인 입장에서는 고민이 될 수 밖에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실제로 소년과 가족들은 수사단계에서 대전지역에서 유명한 전관 변호사님을 선임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전관 변호사님은 소년에게 인정하고 선처를 구하면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전과기록이 남지 않으니 그 쪽으로 사건 진행 방향을 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년은 결단코 그러한 사실이 없었기 때문에 리스크를 감당하고서라도 무죄를 주장하겠다고 하였고, 결국 기소된 이후 담당 변호사를 변경하기 위하여 사무실에 방문해준 것이었습니다.
"김규백 변호사의 조력"
일단 제가 먼저 해야 할 일은 이 상황이 얼마나 중대한 상황인지 당사자들 모두가 인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소년 당사자, 그리고 부모에게 이 사건은 ‘퇴로가 없다’라는 사실을 강조했습니다. 물론 형사재판부에서 심리 결과 소년보호사건으로 송치할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면 소년보호사건으로 넘겨주는 선고를 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공소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마당에서는 가능한 사건 전개가 아니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반드시 ‘무죄’를 받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사건을 선임한 후, 첫 번째 공판에서 공소사실을 전부 부인한 후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이 이루어지기전까지 수차례 피고인을 만나 단서가 될 만한 부분을 찾아보았지만 딱히 피해자의 주장을 뒤집을만한 정황증거는 나타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결국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은 밋밋하게 진행되었고, 이후 들리는 이야기로는 피해자 본인이 원하는대로 증인신문이 이루어졌다며 피해자가 만족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들렸습니다. 점점 패색이 짙어져 가는 듯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새벽, 도저히 잠이 안와 침대에서 뒤척거리다가 피고인이 전달해준 각종 자료를 난감한 마음으로 뒤적거리던 중, 하나의 작은 영수증을 발견했습니다. 고속버스 티켓이었습니다. 성인 1명과 학생 4명이 탑승한 것으로 확인되는 작은 영수증. 그런데 가만히 보니 그 날짜가 피해자가 본인이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바로 그 당일이었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저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피해자가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각 날짜별로 축구단의 동선과 합숙일정등을 역추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해당 자료를 기반으로 법원에 피해자를 다시 증인신문할 필요성에 대해 역설하였습니다. 법원은 장고 끝에 피해자를 다시 불렀습니다.
다시 나온 피해자는 본인이 왜 나왔는지 영문을 모르는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료를 하나하나 제시하면서 피해자가 주장하는 그 날짜에 합숙소에 있기는 있었는지를 묻자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 적극적으로 진술을 하던 피해자는 갑자기 ‘잘 기억이 안나요’, ‘모르겠어요’ 이 두 마디를 계속 반복하기 시작했습니다. 재판부조차 피해자의 입장 변화에 대해 의아해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1심에서 전부무죄라는 성과를 올릴 수 있었습니다. 판결문에서조차 고심의 흔적은 역력히 보였습니다.
예상치 못한 일격을 당한 검찰에서는 즉각 항소했습니다. 검찰은 항소심에서 피고인이 주장하는 전지훈련일정에 전지훈련이 없었다는 증거로 기상정보까지 찾아서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에 저는 당일 시간별 기상정보를 찾아 재반박하면서 오전에는 비가 왔었지만 전지훈련을 하는 오후에는 비가 그쳐 충분히 훈련을 할 수 있었다는 취지로 재반박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피고인이 주장하는 동선 하나하나, 심지어는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였는데 어느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였고, 이 주유소에 들린 것이 피고인이 주장하는 내용과 일치하는지 등등 매우 사소한 부분까지도 심도있게 살펴보고 의견서를 담아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 재판부의 요구로 또 다시 피해자를 증인신문했다. 1심에서 전부무죄라는 일격을 받은 피해자는 항소심에서 변호인의 인격까지 모욕하면서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가 그 당시 알지못했던 결정적인 것이 있었는데, 피해자가 수사기관에서 제출한 증거 중 출결기록부(출석부)가 조작된 것이라는 사실을 제가 이미 입증했다는 사실까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피해자는 경찰에 출석부를 제출하면서 피해일시를 특정했는데(병결로 처리한 날짜를 보면서), 병결로 처리를 하려면 진료기관에 다녀온 내역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국민건강보험공단에 피해자의 진료받은 내역에 대해 회신받은 결과는 피해자가 피해를 당했다는 기간 동안 병원에 다녀온 사실 자체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항소심 재판부는 분노했습니다. 어떻게 14~15세 밖에 안되는 어린 아이가 출결사항까지 거짓으로 조작하면서 수사기관을 능멸했는지에 대해서 분노했습니다. 피해자는 도망치듯 법원을 빠져나갔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는 당연히 ‘검찰항소를 기각’하는 선고를 하였습니다.
이 사안은 대단히 많은 것을 시사합니다.
불과 14~15세인 미성년자가 수사기관을 마음껏 속일 수 있었다는 점도 충격적이지만, 이러할 경우 피고인의 입장에서 이것이 거짓임을 밝혀내는 것은 더더욱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입니다. 실제로 피고인은 간신히 무죄를 받았지만 재판을 받으면서 오죽 고통스러웠으면 차라리 수사기관에서 인정하고 소년사건 받는게 나았을 것 같다는 말을 여러차례 했습니다.
패색이 짙어져 보였던 초반상황에서 이를 뒤엎고 치밀한 전후관계에 대한 탐색과 사실조회신청을 통해 피해자의 거짓말을 백일하에 밝혀낸 이 사건은 형사전문변호사로서 지금도 제가 계속 들여다보는 사건 중 하나입니다.
편견없이 의뢰인을 대하는 것이 성범죄를 대한 변호인의 기본적인 자세이고, 지금 제 앞에 있는 의뢰인이 이 소년과 같은 사정에 처해있지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변호인이 가진 선입견이 전부가 아님을 아는 것.
그리고 변호인의 선입견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음을 직시하고 의뢰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함께 하는 것.
100%는 아니지만 저는 오늘도 조금이라도 이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