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강간치상 피해자대리 - 상대방 징역 6년
2025-01-13
지난 목요일 대법원에서 사건이 하나 선고되었다.
1심부터 성범죄 피해자대리를 하고 있던 사건이었다.
이 사건은 고등학교의 기간제 교사가 본인이 입시지도를 한 졸업직전인 고3학생과 술을 마시고 학생의 자취방에 들어가 준강간을 범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대해 피해자 본인을 처음 상담했을 때, 피해자는 가해자가 본인에게 준강간을 시도하면서 성기를 삽입했을 당시의 아픔과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한 사실 정도를 기억하고 있었고, 전후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반면에 사건 다음날 피고인은 피해자와 대면하여 본인의 의도된 사실관계를 피해자에게 주입시켜 놓은 상황이라 피해자가 무척 헷갈려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한 가지 특이했던 건 피해자가 관계 직후 학생주임 선생님을 현장으로 불렀고, 피고인이 그 사이에 자리를 피했다는 것이었다. 피해자가 과호흡 증상이 왔는데 피고인이 피해자를 두고 자리를 벗어난 것이었다. 이후 학생주임 선생님이 피해자를 데리고 병원으로 데려간 사건이었다.
여러가지 정황을 보았을 때 준강간 피해가 상당히 의심스러운 상황이었지만 피해자가 피고인에게 보낸 메시지 등을 감안했을 때 입증이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보여 상담 당시 매우 보수적으로 상담을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의뢰인은 수사단계에서도 나를 찾아왔었지만 상담만 받고 선임계약은 체결하지 않은 채 돌아갔다.
그 사이에 나는 기존에 다니던 법인을 퇴사했고, 대전에서 새롭게 사무실을 오픈했다.
그런데 내가 대전에 오픈한지를 어떻게 알고 의뢰인이 다시 연락을 해왔고 확인해본 결과 사건은 어느덧 구공판이 되어있었다.
솔직히 수사단계의 허들을 넘기가 만만치는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보수적으로 상담을 해줬던 것인데, 피해자 혼자서 그 파고를 넘어 사건을 구공판까지 끌고 온 것이었다. 나는 즉각 피해자를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고, 말도 안되는 선임료로 이 사건을 형사와 민사사건 모두 선임했다.
그런데, 갓 20세가 넘은 의뢰인은 나한테 변호를 맡기기위해 자력으로 돈을 모아서 현금으로 선임료를 지불하고 돌아갔다. 이 의뢰인의 집이 어떤 상황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기에 이 친구의 절박함이 느껴졌고,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물론 이후 진행과정은 참 어려웠다. 상대 교사는 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회과목 교사였다. 준강간 법리를 알고 있던 피고인은 성범죄를 전문으로 하는 부띠끄 로펌을 선임해서 오히려 피해자가 동의를 했기때문에 피해자의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면서 화간을 강력히 주장했다.
나는 의뢰인이 공부하는 독서실로 수차례 찾아가 만나서 몇시간이고 결론이 내려질때까지 논의하고 의견서를 썼다. 그 때 당시 내 질문이 굉장히 차가웠는데(오히려 무고를 의심한다고 느껴질 정도로) 아직 대학도 안간 의뢰인은 내 날카로운 질문들을 차분히 소화하며 본인의 의사를 밝혔다.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을 포함한 모든 절차에 피해자는 적극 참여했지만, 그 사이 피해자는 정신과적 치료를 위해 입원과 통원치료를 반복해야만 했다. 피해자 본인은 원하지 않았지만, 병원에서 매우 강력하게 요청을 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일이지만 피해자는 증인신문기일에 출석한 당일을 포함해 공판과정이 진행되는 동안 총 3차례의 자살시도가 있었다. 이를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는 부분이 나를 무척 힘들게 했다.
나는 매 공판기일에 참석하여 상황을 체크하고 반박할 내용이 있으면 피해자변호사의견서를 수차례 제출하면서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원래 피해자변호사는 공판과정에서 특별한 역할이 주어진 것은 아닌데(대부분 검사가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사건은 유독 검사가 별다른 역할을 하지 않았다.
다행히 1심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중형인 징역 6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그러자 피고인은 곧바로 항소했고 네트워크 로펌중 가장 규모가 큰 OO로펌을 선임해서 대응했다. 항소심 첫 공판부터 전관 변호사 1명, 그리고 어쏘 변호사 1명이 매번 공판기일마다 출석하였고, 피해자의 정신병력을 보겠다면서 피해자가 치료하는 병원에 문서송부촉탁신청을 하는 등 말도 안되는 신청을 남발했지만, 당연히 이 사건 이전에는 피해자가 정신병력이 전혀 없었기에 이들의 문서송부촉탁신청은 오히려 피고인의 유죄를 더욱 강력하게 입증하는 증거가 되었다.
당연히 항소는 기각되었고, 상고심 역시 3개월만에 기각되었다. 항소심 선고당시에 피고인측 부친이 선고기일에 출석한 나와 피해자를 보고 해꼬지를 하려고 하여 법원 경위를 통해 분리조치되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굳이 선고기일에 안 보러 와도 된다고 했지만 피해자는 부득불 봐야 한다고 했다.
지난 목요일이 상고심 선고기일이 있는 날이었다. 전자소송에 결과가 올라왔길래 피해자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피해자는 부친이랑 서울까지 올라가서 대법원 판결선고기일을 직접 참관하고 나오는 길이었다고 했다. 불과 몇 초동안 낭독을 하고 끝났을텐데, 굳이 판결선고기일을 참관하러 왜 갔냐고 이야기했지만, 피해자 입장에서는 본인 인생에서 터널을 빠져나오는 그 기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은 피해자변호사의견서만 4번을 냈고, 각 3~40페이지가 넘는 양의 의견서가 제출되었다. 준강간 법리의 소위 패싱아웃과 블랙아웃 법리를 놓고 피고인측 변호인들과 치열하게 공방을 했던 사건이다.
성범죄는 대법원 판례를 기계적으로 암기하고 적용을 시도하면 곤란한 경우가 많다. 피고인과 피해자의 인적 관계, 그리고 전후 상황을 면밀하게 들여다봐야 한다. 사실관계 자체를 놓고 싸움을 벌이는 경우가 8~90%이다. CCTV가 없는 이상 소위 말하는 STORY의 개연성이라는 부분이 성범죄에서는 절대적인 영향을 차지한다.
준강간 사건은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피고인이 상황을 기억하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피고인은 본인에게 유리하게 사실관계를 짤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준강간에서 무혐의가 많이 나오는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다.
이 사건의 또 하나 특징은 정신과적 질환을 강간치상에서의 '상해'로 인정했다는 것이다. 사실 정신과적 질환을 강간치상에서의 '상해'로 인정함에는 상당한 장애물이 있다. 강간행위로 인하여 발생한 상해임이 입증되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항소심에서 피고인측이 피해자 병원에 문서송부촉탁을 보낸 것도 이와 같은 인과관계를 끊어내기 위함이었는데 결과적으로 실패했다.
길고 긴 사건의 한 호흡을 마무리하는 지점은 절반은 홀가분하고, 절반은 반성이 된다. 결과가 좋으니 홀가분하지만, 조금 더 간단하고 빠르게 끝낼 수는 없었을까, 피해자가 조금 덜 고통스러운 방법이 있지는 않았을까, 늘 돌아보게 된다.
오랫동안 고통 가운데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그녀의 인생을 응원한다.